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 삶을 껴안고 다독이던 채색화
▶ 작자미상, <매화 책거리도>(8폭 병풍)(19세기)
종이에 채색, 118x292cm, 개인 소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회화의 전통에서 채색화는 그 역사가 매우 깊지만, 시대 상황 속 부침으로 인해 미술계에서 다소 홀대를 받았던 비운의 장르이기도 합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를 열어 근대 이전의 채색 전통을 재조명하는 자리를 처음으로 마련했습니다.
채색화가 한국인의 삶에 녹아 들어 벽사, 길상, 교훈, 감상 등으로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듯 한국 미술계에 풍요로움을 더해줄 채색화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하고, 각 역할별로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80여 점의 작품들로 구성된 특별전입니다. 전시에는 제15대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합니다.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민화 작가 10여 명도 함께 참여하며, 그중 3인 작가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하여 13점이 최초로 공개됩니다.
전시는 전통회화의 역할을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등 네 가지 주제, 6개 섹션으로 구성했습니다. 첫 번째 ‘마중’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을 주제로 한 존 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로 전시를 마중합니다. 두 번째 ‘문 앞에서:벽사’에서도 길상의 첫 역할인 벽사의 의미를 담은 도상들로 시작됩니다. 신상호 작가의 을 시작으로 <욕불구룡도>와 <오방신도>, <까치 호랑이>, 성파 대종사의 <수기맹호도>와 같은 전통적인 도상들이 한애규의 <기둥들>, 오윤의 <칼노래> 등과 함께 펼쳐집니다. 세 번째 ‘정원에서: 십장생과 화조화’에서는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 19세기 말 작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길상 도상의 의미와 표현의 확장을 모색해 온 회화와 영상 작품 등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십장생도> 병풍과 함께 김혜경의 영상작품 <길상>, 전혁림의 <백낙병>, 김종학의 <현대모란도>, 손유영의 <모란 숲>, 홍지윤의 <접시꽃 들판에 서서> 등의 작품이 포함됩니다. 네 번째 ‘오방색’에서는 높은 층고의 열린 공간 중앙홀에 2개의 작품이 설치됩니다. 모두 오방색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김신일의 설치작품 <오색사이>와 이정교의 거대한 네 마리 호랑이 작품 <사∙방∙호>가 선보입니다. 다섯 번째 ‘서가에서: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에서는 정원을 지나 들어간 어느 서가에서 만난 책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문자도와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매화 책거리> 8폭 병풍을 포함한 다양한 책가도,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격변의 시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록화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담 너머, 저 산: 산수화’에서는 서가를 나와 다시 정원에 들어서며 보이는 담 너머 펼쳐진 산수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채색화 분야와는 다르게 감상화로 분류되어 중앙화단에서도 크게 유행했던 산수화의 다양한 변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전시회 개요 ]
– 기간: 2022.06.01-2022.09.25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층, 1, 2전시실. 중앙홀
– 작가: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성파 대종사, 송규태,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작가 60여 명
– 작품수: 80여 점(고미술품과 영상, 설치, 디자인, 회화, 공예, 사진, 서예 등)
– 관람료: 2,000원
– 주최/후원: 국립현대미술관
# 주류 역사에 가려졌던 한국 채색화를 다시보다
▶ 작가 미상, <욕불구룡도>(연도 미상)
한지에 채색, 10폭 병풍, 129.5×57.2cm(10), 경기대학교소성박물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 박대성, <반구대 소견>(2018)
종이에 수묵담채, 200x500cm, 작가 소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 이우환, <관계항>(1979)
종이에 수채, 64.8×5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를 6월 1일부터 9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채색화는 민화, 궁중회화, 종교화, 기록화 등을 아우르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벽사) 복을 불러들이며(길상) 교훈을 전하는(문자도) 한편, 중요한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기도 하는(기록화) 등 다양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이후 문인 취향의 수묵 감상화 위주 미술사 서술이 주류를 이뤘고, 장식과 기복의 ‘역할’을 지닌 회화를 순수예술로 보지 않았던 근대 이후 예술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채색화는 전통 회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의 찬미》는 기울어진 한국미술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련된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채색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하여 19~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 8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에는 제15대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합니다. 또한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민화 작가 10여 명도 함께하며, 그중 3인 작가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하여 13점이 최초로 공개됩니다.
# 19세기와 20세기 사이, 채색화가 건네는 따스한 시각 언어
▶ 스톤 존스턴(Stone Johnston), <승화>(2021)
4채널 영상, 사운드 설치, 12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가장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의 춤으로 시작한다. 스톤 존스턴은 영화적 연출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비주얼 아티스트입니다. 시카고 출신인 그는 생애 절반을 아시아에서 영화와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인권운동 등을 하며 보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40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의 이야기를 영상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용을 주제로 하는 영상 <승화>는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머리에 모란과 복숭아를 얹고 21세기 현재로 소환된 다섯 색깔의 처용은 그의 춤으로 역신뿐만 아니라 창세기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원죄와 폭력성마저 정화시키고자 하는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사면에 4방위를 상징하는 4명의 처용이 등장하고 춤이 시작되는데, 이 공간의 가운데에 있는 관람객은 ‘중심’을 상징하는 5번째 노란색 처용이 되어 벽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 성파, <수기맹호도>(2012)
패널에 옻칠, 162x570cm, 작가 소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 제 15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중봉 성파 대종사의 작품이다. 성파는 통도사 서운암에 기거하며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해 장경각에 봉안하고, 옻칠 불화, 민화 작업도 꾸준히 병행해온 인물이며, 예술가로서의 명성도 높습니다. <수기맹호도>는 민화 <대호도>를 재해석한 대형 옻칠 작품으로, 자다가 깨어나 기지개를 펴고 있는 위풍당당한 호랑이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대호도>가 일제 강점기에 식민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분연히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 시대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어려운 여러 상황을 극복하고 힘차게 전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습니다.
▶ 안성민, <날아오르다: RISE UP(라이즈 업)>(2022)
아크릴릭, 비닐 설치, 250x1000cm, 작가 소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화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성민은 뉴욕 거리에 다국어로 제작된 문자도를 설치하는 작업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날아오르다: RISE UP(라이즈 업)>은 동서양의 모티브를 한 화면에 담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민화의 문자도와 서양의 여러 가지 장식 서체, 유럽 전통 미술양식의 장식(ornamentation)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독특한 서체 디자인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의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작가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누런 창호지에 경면주사를 사용하여 글을 썼던 전통 부적처럼, 노랑 바탕에 붉은 서체로 작업한 작품에는 힘든 오늘 하루를 딛고 ‘날아오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 송규태, <서궐도>(2014)
비단에 채색, 130x400cm, 개인 소장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서궐도>는 조선의 정궁 경복궁의 오른쪽에 위치한 경희궁 전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특히 파인 송규태 화백이 스케치 상태로 전해지는 ‘서궐도안’에 정교하고 화려한 채색을 입혀 완전한 궁궐도로 되살려낸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원로 미술사학자 안휘준 교수는 이를 두고 “뼈만 있던 것에 살을 붙이고 피를 통하게 하여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나게 했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서궐도>는 50여 년의 세월을 외길로 걸어온 장인의 농익은 품격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서궐’이라 불리는 경희궁의 옛 모습을 전해주는 유일무이한 시각 자료입니다. 파인 송규태 화백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국내 주요박물관에 소장된 수많은 중요 고서화 등 문화재를 보수, 재현하는 과정에서 전통 채색화를 독학하여 오늘날 민화화단의 초석을 닦은 민화계 최고의 원로이자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입니다.(송창수 글에서 발췌)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또 한 번의 ‘첫 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실제 전시 관람이 어려운 전국 각지의 관람객들이 집에서 PC나 휴대폰으로 전시를 실제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상에 현실과 동일한 디지털트윈 전시 공간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온라인 전시 관람을 넘어 시공간에 제한이 없는 특화된 디지털 미술관으로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마음을 기댔던 전통 채색화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먹구름이 서서히 걷혀가고는 있지만, 오랜 그림자를 드리웠던 만큼 우리의 마음과 일상 곳곳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위로가 필요한 이때, 채색화 속에서 들려오는 따스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예작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