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얼굴 바꾸기 프로젝트
서울역의 마지막 15분을 디자인하다
서울역 TIDS 디지털 안내체계 개선 프로젝트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기 전 마지막 15분.
이용객에게 이 시간은 단순한 대기가 아니라, 타는 곳을 확인하고 이동 경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서울역 TIDS 개선 프로젝트는 바로 이 순간에서 출발했습니다. 전광판을 새롭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객이 언제 어디서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다시 살폈습니다. 복잡한 역사 공간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필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정보의 흐름과 이용 경험을 다시 설계한 프로젝트입니다.

▷ 출처 –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센터
정보가 넘치는 역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찾아낸 TIDS 혁신
서울역에 들어선 이용객은 수많은 정보와 마주합니다. 출입구 번호와 플랫폼 번호, 열차 시간과 호차 정보, 방향 안내와 광고, 디지털 화면과 아날로그 표지판이 한 공간에 공존합니다. 문제는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국철도공사가 추진한 서울역 TIDS(여객자동안내장치) 디지털 안내체계 개선은 바로 이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2024년 진행된 「철도역사 디지털 안내체계(TIDS) 방향성 제안」 연구는 서울역과 대전역의 공간과 이용객 행동을 분석하며 기존 안내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습니다. 이어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센터는 연구 결과를 실제 디자인과 운영체계로 연결하며, 서울역 이용객의 마지막 15분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광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바꾸는 일
기존 TIDS의 문제는 단순히 화면이 오래되었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세로로 배열된 텍스트를 이용객이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가야 했고, 한 화면에 표시할 수 있는 열차 수도 제한적이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열차와 이용객이 집중되는 서울역에서는 화면을 찾고, 자신의 열차를 찾고, 다시 플랫폼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윤여일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센터 서비스디자인팀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정보 구조의 한계”라고 설명합니다. 디스플레이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객이 실제로 어떤 순서로 정보를 찾고, 읽고, 판단하며 이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따라 TIDS 개선은 단순한 전광판 교체가 아니라 이용객의 판단 흐름을 다시 디자인하는 사용자 경험 개선 프로젝트로 접근했습니다.
기초연구에서도 같은 문제가 확인됐습니다. 기존 TIDS는 주변의 대형 광고와 다양한 디지털 매체 속에서 상대적으로 시인성이 떨어졌고, 디지털 안내와 기존 사인, 광고가 혼재하면서 이용객에게 인지 과부하를 유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숫자 체계와 과도한 색상 사용은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이용객이 가장 불안해지는 순간, 출발 15분 전
이번 연구와 디자인 개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골든 타임 15분’입니다.
철도 운영 시스템상 열차의 타는 곳은 출발 약 15분 전에 확정됩니다. 운영 측면에서는 하나의 시간 정보이지만, 이용객의 관점에서는 행동이 시작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플랫폼이 확정되는 순간, 대기하던 이용객은 자신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판단하고 실제 승강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기초연구는 이 시점을 이용객의 행동을 촉발하는 ‘트리거’로 해석했습니다. 특히 초행자나 고령자처럼 역사 공간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객은 이 순간 화면을 보고 정보를 이해하고, 방향을 판단하고, 이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15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철도 운영 데이터가 아니라, 가장 명확하고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디자인의 기준점이 됐습니다.
기존 이용객 여정 분석에서도 이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서울역 이용객들은 플랫폼 정보가 확정될 때까지 TIDS를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했고, 코레일톡을 통해서도 기본 알림으로 ‘타는 곳’ 정보를 자동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연구는 현장의 TIDS와 개인 스마트폰을 연결해 플랫폼이 확정되는 순간 이용객에게 알림과 함께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 출처 –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센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먼저 보여줄 것인가’
정보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우선순위입니다. TIDS에는 출발시간, 열차번호, 종착역, 정차역, 지연 여부, 타는 곳 등 다양한 정보가 표시됩니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동일한 크기와 방식으로 보여주면 이용자는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기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디자인의 이론적 기준과 실제 이용자 행동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플랫폼 번호가 이동 결정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타는 곳’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장 조사에서는 국내 이용자들이 출발시간을 먼저 확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새 TIDS는 이용자의 실제 정보 탐색 습관을 반영했습니다. 출발시간을 시선이 먼저 향하는 위치에 배치하고, 이어서 타는 곳을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정보의 시선 흐름을 설계했습니다. 즉, 이용자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묻기보다 이용자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한 결과를 디자인에 반영한 것입니다.
표가 아닌 카드로, 열차 한 편을 하나의 정보로
새로운 TIDS 디자인의 대표적인 변화는 카드형 정보 구조입니다.
기존의 표 형태가 여러 열차 정보를 동일한 행으로 나열했다면, 카드형 디자인은 열차 한 편의 정보를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 묶습니다. 이용객은 전체 운행표를 읽는 대신 자신이 이용할 열차를 하나의 정보 덩어리로 빠르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더디엔에이의 기초연구에서 제안된 가로형 카드 모듈 디자인과 연결됩니다. 서울역의 플랫폼이 좌우로 펼쳐진 물리적 구조를 화면의 수평적인 정보 구조에 반영해, 이용객이 화면을 보면서 실제 공간의 방향과 위치를 직관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이용객이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공간 구조, 즉 ‘멘탈 모델’과 실제 안내체계의 구조를 일치시키려는 시도입니다.
또한 모바일 환경과의 연속성도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이용객은 예매 단계에서부터 스마트폰을 통해 카드형 정보를 접하고, 역사에서는 같은 구조의 정보를 대형 TIDS에서 확인합니다. 앞으로는 ‘타는 곳’이 확정되는 시점에 코레일톡과 현장 TIDS가 유사한 정보 구조와 시각적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모바일과 공간 사이의 정보 경험을 하나의 여정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복잡한 서울역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디자인
서울역은 철도역이면서 동시에 지하철, 공항철도, GTX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연결되는 거대한 복합 공간입니다. 이용객이 가장 혼란을 겪는 지점도 단순히 전광판 앞이 아니라 여러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분기점입니다.
윤 팀장은 이용자가 공간에 대한 멘탈 모델을 형성하기도 전에 이동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문제로 봤습니다. 안내정보가 충분하지 않으면 이용객은 자신의 경험이나 추측에 의존하게 되고, 특히 초행자와 고령자에게는 이러한 과정이 더 큰 부담이 됩니다.
기초연구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이용객이 실제 바라보는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공간 정보를 보여주는 헤드업 맵핑(Head-Up Mapping)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기존의 조감도식 안내도 대신, 현재 위치에서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플랫폼과 출입구의 위치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정보가 이용객에게 ‘해석해야 하는 지도’가 아니라 ‘바로 따라갈 수 있는 방향’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출처 –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센터
광고보다 먼저, 공공정보의 자리를 확보하다
서울역은 안내표지와 광고, 상업시설의 사인과 대형 디지털 화면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이 때문에 공공 안내정보가 다른 시각적 요소에 묻히지 않도록 정보의 위계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한국철도공사는 공공정보와 상업광고를 단순히 디자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분리하는 기준을 적용해 왔습니다. 공공정보가 위치하는 영역을 설정하고, 표준 색상과 픽토그램, 서체를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이용자가 안내정보와 광고를 빠르게 구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울역의 대형 디스플레이 역시 같은 원칙을 따릅니다.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보다 승객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공정보가 우선이며, 그 이후의 영역에서 광고와 공익 메시지, 미디어아트 등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를 단순한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철도역이라는 공공 인프라의 기능과 공간 경험을 함께 고려한 접근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아야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용객이 화면의 디자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정보를 발견하고 열차를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화면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기공간과 이동동선의 관계도 함께 검토했습니다. 서울역 현장 조사에서는 대기 이용객과 이동 이용객이 같은 공간에서 뒤섞이고, 좌석의 방향 때문에 TIDS를 확인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몸을 돌리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연구는 대기공간과 이동동선을 분리하고, 이용객이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키오스크형 안내와 좌석, 공간 구성까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향후 과제로는 전국 역사로의 확대와 대기공간 내 소형 TIDS 보강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대형 화면에서 한 번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 더해, 이용객이 실제로 머무르는 장소 가까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 접점을 촘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출처 – 한국철도공사 디자인센터
결국 서울역 TIDS 개선 프로젝트는 전광판의 크기나 화면의 새로운 디자인만을 이야기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대기하고, 플랫폼 정보를 확인하고, 이동해 탑승하는 전체 과정을 하나의 사용자 여정으로 바라본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출발 15분 전이라는 짧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복잡한 공간에서 이용객이 정보를 읽고 판단하느라 멈추는 대신, 필요한 정보가 적절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도록 만드는 것. 이용자가 디자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길을 찾고 열차를 탈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디자인은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윤여일 팀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를 “이용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열차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술을 도입하거나 화면을 교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원칙을 공공 인프라에 적용한 이번 시도는 앞으로 철도역의 안내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역의 마지막 15분을 바꾼 것은 새로운 화면 하나가 아니라, 이용객의 행동과 불안을 이해하려는 디자인의 관점이었습니다.
* 서울역 여객자동안내표시기+LED미디어월(플랫폼111)은 2026년 공공디자인대상 공예문화디자인진흥원장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정보의 흐름과 이용 경험을 다시 설계한 프로젝트
이번 서울역 TIDS 개선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디자인은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다음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출발 15분 전’이라는 이용객의 결정적인 순간에 주목해, 정보와 공간, 그리고 이동 경험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디자인은 단순히 화면이나 형태를 만드는 일을 넘어,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더 편안한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예작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