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기

그 옛날이라고 어찌 바람 잘 날이 있었겠는가? 사극을 보면 정치가들의 목숨을 건 욕망이나 민초들의 고난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시절은 하수상합니다.
통일의 기대를 바짝 당겨줄 것으로 믿었던 박근혜 전대통령의 실각(‘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대법관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이 그러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의 반환점을 돌면서 연일 고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조국과 사법개혁 파동’으로 광화문과 서초동이 시끄러웠으며, ‘코로나19’라는 근대역사상 초유의 돌림병이 세계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여름이 오면 꺾일 거라는 전염병은 오히려 더 엄중해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 등장한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이슈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누구의 말이 더 정당성을 가지느냐가 관건은 아닐 것입니다. 앞뒤 분별없이 제 몫을 챙기고 사회 정의는 뒷전인 기득권들의 목소리가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듭니다. 기득권을 견제해줄 수 있는 ‘백마를 타고 오는 도인’을 기다리는 것도 난망합니다.

보편적 복지 증진보다는 상대적 박탈감 해소가 정치권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고대에서 중세 봉건제도가 무너지기까지, 우리는 또한 조선시대까지 학문이나 정치는 특정계층의 전유물이었으며 학문은 정치와 종교를 포함하고 철학도, 수학도 한 덩어리였습니다. 서학(천주교)과 동학을 통해 실용학문에 눈을 돌렸지만 쇄국이라는 선택은 망국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18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동력을 사용한 기계가 생산수단으로 보편화되고 연이어 전기의 발명은 산업적 풍요를 가져왔습니다. 반면 분업과 과업관리가 새로운 계층을 나누고 빈곤 속의 풍요와 인간소외라는 병폐도 동반했습니다.

초연결 사회를 의미하는 4차산업 시대는 컴퓨터와 Online Network, 그리고 인공지능(AI)을 기본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다보스포럼은 지금 초등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일에 종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당장 STEM 관련 직업은 그 외의 직업에 비해 두 배 이상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STEM 교육은 과학기술 중심교육으로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Math(수학)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모두 기술적으로 컴퓨터와 무선통신과 관련이 있으며 코딩을 바탕으로 하는 것들입니다.

대안으로 STEAM으로의 진화에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는 교육인 STEM에 Arts(인문학, 예술)을 더한 개념입니다. 2006년 Georgette Yakman은 STEAM 이론을 내놓으면서 Arts의 의미를 Fine Arts(순수예술)뿐만이 아니라 Liberal Arts(인문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문은 과거와 내용물은 다르지만 프레임은 같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융합의 시대로 되돌아가라고 명령하지만 이미 물질적 풍요와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의 저항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는 돈과 권력이 공생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숙제는 ‘부의 고른 분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문도, 투쟁이나 전쟁도 ‘분배의 정의’에 대한 이견이 시발점이었습니다. 다람쥐가 겨울을 대비하여 도토리를 저장하듯이, 나란히 자라는 나무들도 그 키가 다르듯 인간 또한 스스로 비축하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자연의 법칙’이 또한 그러하고 ‘균형이 아닌 균형’을 인위적으로 깨뜨리는 시도가 학문이요 전쟁의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발달된 의료기술로 수명이 연장되었으며, ICT의 발달로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제정세는 패권주의로 분화하고 국내에서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이익집단의 이합집산과 제 몫 챙기기 풍토가 만연합니다. 제재하는 사람들이나 시스템도 부재합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숙명인 ‘불평등’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 공간은 달리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제자리로 돌아온 듯 여전히 세상은 어지럽습니다.
하수상한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적 처방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고 원론적이더라도 공교육과 사회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바로세우는 노력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 이수호(ISO TC8_조선 국제표준 전문위원, 해양공학박사)